사념처 중 관신부정 의 의미
안녕하십니까 스님 네 질문드리겠습니다.
4년차 중 관심 부정의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지구상 성적 학대로 고통받는 수많은 경우들을 생각할 때와 성매매 여성을 생각할 때 관심 부정의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맞는지요.
몸에 대한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
상처를 안고 사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것입니까 성스러울 것이 없으니 문물 자원으로 사는 사람들을 비난할 여지가 없는 걸까요.
여러분들이 자기 생활을 한번 이렇게 살펴보세요.
살펴보면 하루 중에 제일 제일 신경 많이 쓰는 게 뭐예요.
몸이에요. 우선 맨날 맛있는 거 차다.
먹여줘야지 좋은 거 입혀줘야지 씻어줘야지 또 화장해 줘야지 다듬어줘야지 또 잠자리 말을 내가 편안하게 재워줘야지
그러니까 사는 게 어쩌면 여기에 거의 8~90 프로를 여기에 다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
이런 얘기예요. 그리고 지금 못 살겠다.
할 때 전부 이게 먹여주는 것을 제대로 못했다.
입혀주는 걸 제대로 못 했다. 재워주는 걸 제대로 못했다.
이거 갖고 나를 지금 괴로워하고 살잖아요.
근데
부처님은 몸이 필요 없다. 이런 얘기가 아니에요.
몸이라는 게 정말 전전긍긍하며 애지중지할 만한 그런 건가 이 몸이 영원한 건가 영원한 게 아니다.
이렇게 아무리 먹여주고 재워주고 닦아주고 해도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거다.
그러니까 이 관심 부정의 핵심은 몸에 집착하지 말라는 거예요.
몸을 함부로 하라 이 얘기가 아니에요.
그러면 몸에 집착을 안 하면 어떠냐 먹는 거는 영양가가 중요해요 맛이 중요해
영양가가 중요합니다.
그다음에 배가 부른 게 중요해요 건강이 중요해요
건강이 중요하게
그러면 이 음식을 먹을 때 기본정신은 맛으로 배부름으로 먹지 말고 약으로 먹어라 약의 관점에서 그러면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소식이 건강에 더 좋아요.
과식이 좋아요.
30이 좋습니다.
그럼 육식이 좋아요. 가능하면 채식 위주가 좋아요.
예 진심이 좋습니다.
그럼 백미가 좋아요. 작곡밥이 좋아요.
자꾸 빠지셨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정말 몸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다음 못매 낸다고 막 그냥 여기다가 막 졸라매고 막 이렇게 하면 건강에 나쁘지 않아요.
복이 좋은 거지 건강에 나쁘지 않아요.
이빨이 가지런하고 하얀 게 중요해요 튼튼한 게 중요해 눈이 동그란 게 중요해요 잘 보이는 게 중요해요
잘 보이는 게 중요하다
코는 냄새 맡고 하는 게 중요해요 코나리 울뚝 서는 게 중요해요 그러니까 몸이라는 것은 기능적 기능이 건강한 게 중요하지 모양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 근데 우리가 뭐 콧날을 세운다 턱을 깎는다 뭐 치아를 교정한다 이런 거 다
미용의 중심이잖아요. 이게 다 몸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고 거기에 우리는 엄청나 그것 때문에 열등의식 느끼고 그것 때문에 우월 의식을 느끼고 어 전전 건강하고 살아간다.
그래서 몸에 대한 집착을 탁 놓고 먹는 거 뭐 간단하게 뭘 먹어도 좋다.
나중에 영양이 좀 부족하다면 조금 보충하면 되는 거고 입는 거 뭐 남복에 벗고 다녀서 눈에 거슬리지 않을 정도로 있고 겨울에는 춥지 않을 정도로 있고 아무렇게나 다닌다 해서 벌고 먹고 다니면 안 되잖아 그렇죠 그다음에 자는 거 뭐 눈만 붙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우리 다 벌써 먹고 있고 자는 걸로부터는 해방이 된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는 출발 딱 하면 먹고 있고 자는 게 해방이 돼요.
먹는 거는 뭐 한다 남 먹다 버린 거 주서 먹는다 얻어 먹는다 입는 건 뭐 한다 입다가 버린 주서 입는다 자는 거는 나 밑에는 동굴에서 잔다.
하니까 의식주가 딱
출가하는 즉시 의식주가 100% 보장이 돼 버린 그 걱정할 게 있나 없나 없어 그러니까 딱 정진에 집중할 수가 있고 남을 돕는 데 집중할 수가 있는데 우리 뭐 수행한다고 하면서도 출가해가 스님이 돼서도 내 먹는 거 입는 거 자는 거 뭐 집 짓다가 볼일 다 보고 뭐 어디가 이래 꾸며 입는데 시간 다 보내고
맛있는 거 찾아다니고 그러니까 돈이 필요하니까 돈을 구해야 되고 또 남한테 폼 잡는데 그러니까 지휘가 필요하니까 지휘소로 가지려고 그러고 그러니까 이게 중생 고해에 세상의 갈등에 고해에 큰 원인이다.
그래서 먼저 몸에 대한 집착을 낳아라
그런데 몸이 좋은데 어떻게 놓냐 그러니까 몸이라는 게 그렇게 성스럽다고 할 만한 게 없다.
이 부정하다는 거는 더럽다는 뜻이 아니에요.
성스럽다. 할 게 없다. 이 정자는 성스럽다.
할 정자에요. 깨끗한 정자를 쓰지만 뜻은 성스럽다.
왜 부정 탄다 이런 말 들어봤죠. 야 그거 하면 재수 좋다 이게 성스러운 거고 그거 하면 재수 없다.
이게 뭐다
부정하다 이러니 이 몸은 성스럽다. 할 만한 게 없다.
그러니까 집착하지 마라 이제 이것에 몸을 있는 대로 내가 막연히 생각하니까 그렇지 몸을 있는 대로 관찰하면 그렇다 그래서 첫 번째 몸의 관찰이 뭐다 호흡이에요.
호흡은 이렇게 수행에 있어서 이걸 갖다가 이제 수식관이다.
또는 이제 아나바나라고 그래서
이렇게 집중하는 훈련이에요. 첫 단계예요.
그래서 먼저 호흡을 알아차리기 두 번 다음에 뭐예요.
움직일 때는 뭘 알아차린다 동작을 알아차리기 세 번째는 몸이라는 건 잘 보면 이건 결국 지수화풍 네 가지 요소로 돼 있다.
몸에는 뼈라든지 살은 고체죠 땅의였어 그다음에 혈액이나 침이나 이건 뭐다 무어이였어 액체 그 다음에 숨은 뭐다 기체 그 다음에 온기는 뭐다 에너지 화이어스 이 지수화풍 그 땅 물 바람 불 이렇게 얘기하지만 요즘 과학적으로 얘기하면 이건 뭐다
고체 액체 기체 그 다음에 파 파 무슨 말인지 알겠죠.
파동 에너지 에너지는 파지 않습니까 이런 요소로 몸을 이루고 있고 이건 흩어져 버리면 돌아가 버리고 다시 모이면 몸이 형성되고 이런 거다 여기에 무슨 아무런 다 분석해 분에 보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
또 이제 죽었을 때 시신을 가만히 이렇게 회부해 놓고 보면 눈에는 눈알 코에는 뭐 콧물 입에는 뭐 침 이렇게 다 몸의 부위를 전부 이렇게 해부한 상태로
구성해서 하나하나 보면 그 콩팥에 뭐가 따로 들어있는 게 없고 심장에 따로 들어 있는 게 있는 게 아니고 위에 따로 뭐가 불성이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다 분석해서 보면 아무것도 이렇게 집착할 바가 없다.
그래서 주로 시체를 나눴고 관하는 거예요.
시체를 보면서 너도 어제는 나 같았다.
이거야 나도
내일이면 너 같을지도 모른다 이거야 그러니까 너가 곧 나고 나가고 너다 이러면서 이제 몸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그런 수행을 하는 거 그러면서 이 시신이 시신을 두고 시신이 쭉쭉 썩어가는 과정을 부샘 당시에는 이렇게 시체를 갖다 버린 숲의 명상이었다고 그러니까 시체가 뭐 적게 썩은 거 많이 썩은 거 다 썩은 거 이런 걸 볼 수 있어요.
없어요. 있지
이게 이제 9가지로 이 썩어가는 과정을 9가지로 나누는가 그걸 관하는 게 있어요.
이거는 이제 백골관이라고 그래요 백골관 이렇게 딱 하면 몸에 대한 집착이 탁 떨어져요.
근데 우리는 지금 그럼 그렇게 할 수가 없잖아 그렇죠 그냥 앉아서 생각을 하니까 머릿속으로만 생각하지 직접 딱 경험하는 게
아니다. 보니까 이게 좀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태국 같은 데 가보면 시체를 딱 해부해가 방부제 딱 해가 유류관에 넣어 놓고 출가한 스님들이 그 앞에서 탁 이렇게 벽골관 하는 그런 수행을 볼 수 있거든요.
그러면 이제 이 우리가 몸에 너무 전전긍하는 몸을 함부로 하라는 얘기를 들으면 안 돼요 몸에 그렇게 집착할 바가 못 된다.
그러면 얼마나 자유로운지 당장 한번 해보세요.
얼마나 삶에 걱정 근심이 확 없어져버려요.
이제 이게 첫 번째 몸에 대한 관찰 그다음에 이제 두 번째가 뭐냐 느낌이에요.
아 기분 좋다. 기분 나쁘다 기분 좋다.
기분 나빠 우리 기분이 살고 기분이 좋잖아 그렇죠
이게 몸이 첫째고 두 번째가 기분이야 뭐 조금만 한 거 기분 나빠서 오늘 기분이 좋아서 내가 한 턱 늘 기분에 죽고 사는데 이 기분이라는 걸 가만히 많이 깊이 조사를 해 보면 뭐다 이게 다 괴로움의 원인이다.
다 괴로움이다. 이건 길게 설명하면 안 되니까 다음에 할게요 세 번째 이제 마음이에요.
좋다 싫다 좋다 싫다 이 좋고 싫은 게 막 시뚝배뚝시뚝배뚝 내 죽을듯이 바뀌는 거예요.
금방 좋다. 해놓고 금방 싫다 그러고 그래서 이 감정 좋고 싫고 여기에 너무 구회받으면 이게 무상하다 늘 그냥 죽을 듯이 하는 여기에 집착할 바가 못 된다.
좋다고 그거 꼭 해야 되고 싫다고 안 해야 되고 그런 거 아니다.
좋아도 손해 나면 놔버리고 싫어도 이익 되면 하고 좋고 싫고로부터 자유로워져야 된다 그러려면 마음이라는 건 이건 항상 함이 없다.
늘 그냥 응 물결 잃듯이 일다가 사라지는 거다.
이게 관심 우산 그 다음에 우리가 뭐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있다.
뭐 어디에는 하늘에는 진리가 있다. 법에는 진리가 있다.
그렇지 않다.
그런 진리라고 하는 어떤 실체는 없는 거다.
그게 관법무예요. 그래서 네 가지를 내가 환하게 체험을 하면 모든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것이 이제 사념처관이다. 근데 뭐 이거 네 가지 다 할 필요 없고 첫 번째 호흡감만 딱 해서 집중을 하고 그 다음에 자기의 느낌과 감정에 끼어 있으면
사는 게 화 금방 나도 내가 하는데 죄송합니다.
이렇게 이제 실수를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차리고 다시 되돌아오는 연습을 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자유롭게 살 수가 있어요.
그리고 또 이렇게 또 경험을 해보면 좋구나 하고 경험해보면 누가 하지 마라 그래도 어때요 하게 돼 그러니까 주말에 뭐 골프 치러 가고 주말에 단풍 구경보다는 주말에 딱 어디 가서 동호회 마련 해가
명상을 하고 나누기를 하는 게 훨씬 내 삶에 도움이 된다.
주말에 뭐 어디 가서 불고기 파티하는 것보다는 어디 가서 농촌 가서 봉사하면서 하고 도반들끼리 나누기 하는 게 내 삶에 훨씬 도움이 그 그거 좋은 거 입으면 뭐 하노 내가 노예가 남한테 그거 보여주면 뭐해
남 잘 입은 거 구경하는 거 내가 보지 자기 잘 입은 거 자기가 보이나 얼굴 이거 뭐 이빨 해놓으면 내 눈에 보이나 안 보이지 왜 남 좋아하고 그 이빨까지 해가지고 그래 아프게 이이가 아파서 기능을 조절하는 거는 괜찮은데 눈 동그랗게 이렇게 쑤으면은 먼지만 자꾸 들어가지 그게 뭐가 좋다고 이 관점을 탁 바꿔버려야 미니 뭐니 하는 이런 근데 그렇다고 다른 사람 보고 그리 하지 마라고 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그 사람의 영역이니까
내가 그런 관점을 딱 바꾸고 인생을 살면 인생이 걱정거리가 없어 회사 가도 괜히 예쁘면 남자만 따라다니지 그게 도움이 뭐가 되는데 귀찮기만 하지 그러니까 우리가 방 넓은 집에 집 큰 집에 딱 가면 걱정이 딱 앞서야 돼 아이고 이거 누가 청소하지 이렇게 생각이 이래 바뀌어야 되는데 아이고 좋네 그러니까 이게
삶이 고해가 끝이 안 나는 거예요. 그저 몸 하나 누이면 되지 그거 넓으면 뭐 하노 청소하기 힘들지 이렇게 관점을 딱 바꾸되 남 보고 니도 그래라 이 말은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이 관점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지고 내가 그렇게 딱 관점을 갖고 살면 훨씬 자유로워요.
회사 가서 또 동료들하고 열심히 하더라도 막 경쟁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이럴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먼저 올라가겠다면 가라 가라 가라 뭐 먼저 가면 빨리 퇴직하지 뭐 가서 좋은 게 뭐 있고 그러면 꼭 위에 간부가 된다고 좋은 게 뭐가 있어 요즘은 간부 되고 밑에 있으나 월급 차이가 별로 없어요.
그 남이 또 하라 그러면 또 하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어 하라 그러면 하고 딴 사람 하겠다면 하라 그러고 이렇게 해도 얼마든지 살 수 있고 나는 그 일 말고도 봉사하고 수행하고 정토에서 생부학교 진행하고 할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은데 그 뭐 때문에 거기에 목을 매달고 사느냐 이거야
이렇게 관점을 딱 바꾸면 여러분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어요.
지금 대한민국 같은 데서 걱정할 이유가 별로 없는 거예요.
그리고 이제 조금 여유가 있으면 아직도 우리가 여성 차별이 있다면 좀 시정해야 되고 뭐 요즘 코로나 시대 집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스트레스가 많다. 그러면 행복학교를 더 넓혀서 스트레스를 풀어준다 불교대학에 안내해서 스트레스 좀 풀게 해준다
깨달음 장이 참 효과적인데 깨달음 장은 지금 코로나 시대에 못 하니까 그건 온라인으로 할 수가 없으니까 이렇게 우리가 자기 삶을 긍정적으로 바꿔 나갈 수 있다.
스님은 코로나 시대에 할 일이 없어서 외국에도 못 가지 계장도 못 하지 강연도 못하지 이러고 앉아서 술이나 먹고 울고 있더라
와서 농사 지으면 되지 농사 시골에 지금 일꾼도 부족한데 그런 관점에서 이 몸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 된다 그게 뭐다 관신 부정이다.
이 관심 부정을 하면 내가 성폭행을 당했다.
그래서 그때 통증이 있고 그때 아픔이 있었다.
그래 그거는 뭐 손을 베거나 다친 거하고 똑같으니까 그런데 이 몸이라는 거는 누군가가 더럽힐려야 더럽힐 수가 없고 누군가가 깨끗하게 해줘야 스님이 손 얹고 축복해준다고 몸이 갑자기 성스러워지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나를 깨안았다 해서 몸이 더러워지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거를
강제로 그렇게 당했다. 내가 어쩔 수가 없었잖아 선택할 여지가 없었는데 건물 밑으로 지나가다가 돌멩이 맞은 거 하고 마찬가지지 그러면 치료받으면 되듯이 그러니까 이 관심 부정을 탁 알거나 몸은 이 존재 자체는 누군가가 성스럽게 해줄 수도 없고 이걸 갖다 더럽힐 수도 없다는 걸 알아버리면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지지 그것 때문에 상처 안고 살 필요가 없지 스님 보문도 없고 그런 성추행 당해 상처 입고 살던 사람들이 얼마나 그로부터 자유로워졌는 그러면 이제 또 이걸 갖고 또 이렇게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자유로워지는 방법을 얘기하는데 그럼 내가 남을 성추행해도 괜찮네 그 사람 더러워지지 않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는 잘못된 거예요.
더럽혀지고 안 더럽혀지고 관계없이 왜 남이 싫다는 데 가서 깨안기는 왜 깨 하나 그거는 상대의 의사에 반한 행동이니까 잘못된 거지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성적 학대를 받았다 하면 이 역사적으로 그건 잘못된 거다 평가를 해야 되고 가해자는 사과를 해야 되고 그러면 피해자는 어때요
피해자는 영원히 죽을 때까지 피해의식만 갖고 사는 게 좋겠어 거기로부터 해방이 돼야지 그러니까 그런 경험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부처가 되는데 아무 지장이 없다.
이렇게 돼야 그도 행복하게 인생을 살 거 아니에요.
출처: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제196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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